장수대
설악 전투의 대승을 기념하고 인근의 대승폭포,옥녀탕,가마탕,한계산성,하늘벽을 찾아드는 관광객들의 휴식처로 세워진 한식건물은 규모로 보나 건물의 우수성으로 보아 근래에 보기드문 훌륭한 산장(48평)이다. 더욱이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우거진 속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공원 장수대 분소 맞은 편에 6.25때 설악산을 수복한 국군용사들이 지은 장수대라 불리우는 이 한식집은 요즈음 새로 지은 커다란 휴게소와는 대조를 이루며 자연과의 조화가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제3금강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설악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이 산장은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사철을 통하여 이 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장수대란 이곳에서 6.25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그 옛날을 회상하며 전몰 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명명한 것이며 제3군단장인 오덕준 장군의 후의로 설악산의 개발을 위하여 건립되었다.
대승폭포
장수대 북쪽 1㎞지점에 위치한 대승폭포는 88m의 물기둥이 낙하하여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신라 경순왕의 피서지였던 곳이었다고 전해지며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로 꼽힌다. 대승폭포 앞 넓은 반석에는 조선 선조때 양봉래가 쓴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도 특색이다. 이 폭포는 떨어지는 폭포수의 물보라와 이 물보라에 이어지는 무지개가 영롱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폭포 아래쪽에 중간폭포라는 것이 있어 또 다른 자연미를 선사한다. 대승폭포의 유래를 살펴보면, 옛날 부모를 일찍 여윈 대승이라는 총각이 이 고장에 살았는데, 집안이 가난한 대승은 버섯을 따서 팔아 연명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폭포 돌기둥에 동아줄을 매고 버섯을 따고 있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절벽 위에서 다급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정신없이 올라가보니, 어머니는 간데 없고 동아줄에는 커다란 지네가 달라붙어 동아줄을 썰고 있었다. 덕분에 대승은 목숨을 건졌는데, 죽어서도 아들의 생명을 구해준 어머니의 외침이 들리는듯하다해서 대승폭포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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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외설악을 찾는 사람들이 신흥사를 거쳐 설악산을 구경 하듯, 내설악을 찾는 사람들은 의례 백담사 거쳐 내설악을 찾게 된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자리잡고 있는 백담사는 내설악의 첫 관문으로써 외가평에서 들길을 걸어 공원관리 사무소를 지나 백담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백담사가 나온다.(현재 셔틀버스 운행중) 고찰 백담사의 창건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해 한용운이 지은「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1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절을 지어 미타상 3위를 조성, 봉안하고 이름을 한계사라고 했는데 한계사는 자장이 창건한지 50여년만인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실화로 불타 없어졌지만 곧 재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백담사는 1919년 4월에 당시의 주지 인공선사가 복구한 것으로 백담사의 현존건물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山靈閣) 화엄실법화실 요사채 만해기념관과 함께 3층석탑 1기가 있다. 백담사는 여러 차례 절이름이 바뀌었고 위치도 달라졌기 때문에 그 전모를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화엄학이나 천태(天台) 등 교학계통을 연구하는 사찰이었으리라 짐작되며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오세암 봉정암 등은 모두 유명한 기도 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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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곰배령의 매력은 웅장하지도,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 누군가의 말처럼 화장하지 않은 젊은 처자의 수더분하고 맑은 모습 그대로다. 깊은 산속에서 발견된다는 금강초롱이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고, 아무렇게나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오솔길이 군데군데 뻗어나 있다.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벌떡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해발 1100미터 고지에 약 5만평의 평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만발하여 마치 고산화원을 방불케한다. 봄에는 얼러리꽃, 여름에는 동자꽃, 노루오줌, 물봉선, 가을에는 쑥부랑이, 용암,투구, 단풍등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곰배령은 경사가 완만하여 할머니들도 콩자루를 이고 장보러 넘어다니던 길이다. 가족단위의 탐방코스로 훌륭할뿐 아니라 죽기전에 가보아야할 아름다운 산으로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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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산 자연 휴양림
한국판 노아의 방주(芳舟)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이름 그대로 방태산이다. 芳臺山이 芳台山이 되었고 아직도 계곡에는 방대천(芳臺川)이 흐르고 있다. 방태산 정상에는 약 2톤 가량의 암석이 있었고 여기에는 수작업으로 정을 꽂아 뚫은 구멍이 있었는데 옛날 그 어느땐가 대홍수가 났을 때 이 곳에다 배를 떠내려가지 않게하기 위해 밧줄을 매달았다고 하여 그 돌을 가르켜 배달은 돌(배달은 石,해발1415.5미터)이라고 부르며, 그 당시를 입증해 주기라도 하듯 방태산 정상에는 지금도 바위틈바구니의 흙이나 모래속에서 조개껍질이 출토되고 있다고 하나 현재는 그 돌은 찾아볼 수 없다. 방태산의 식생은 대부분의 천연 활엽수 임지이며 일부 인공조림지도 있다. 주봉인 구룡덕봉(해발1,388m)과 주억봉(해발 1,443m)계곡이 발원지로서 본휴양림의 주된 수계를 이루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다. 특히 마당바위(마당처럼 평평하고 넓은 바위)와 2단폭포는 절경이라 할 수 있다. 피나무, 박달, 소나무,참나무류 등 수종이 다양하여 계절에 따라 녹음, 단풍, 설경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열목어, 메기, 꺽지등의 물고기와 멧돼지, 토끼, 꿩 노루, 다람쥐등의 야생동물도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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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마을
만해마을은 만해 한용운님의 얼을 계승하고 그의 문학세계를 배울 수 있는 "만해 기념관"을 비롯하여 청소년의 심신수련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각종단체들의 컨벤션을 위한 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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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례약수
영화 "태백산맥" 전투장면 촬영지로 잘 알려진 필례계곡은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명소로 되어 있다. 이 약수는 1930년 경에 발견된 탄산약수로 설악산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아 그 동안 아는 이들만이 찾는 약수터에 불과했다. 94년 7월 현리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개통되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고 필례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물놀이하기에 좋은 곳이 곳곳에 있다. 필례약수는 이웃에 있는 오색약수나 방동약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곳이니 만큼 호젓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제읍에서 귀둔을 거쳐 한계령방향으로 약 11km 지점의 필례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 보면 필례계곡을 "필노령" 이라하여 노력을 아끼는 고개길, 즉 지름길이라 하였는데 한계령이 생기기 전 이 길이 영서와 영동을 잇는 지름길이었다. 특히 필례약수는 피부병과 위장병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멀리 서울에서도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약수는 숙취에도 좋으며, 약한 탄산수로 철분이 있어 맛이 비리다. 약수터 이름을 필례라고 부르게 된 것은 베짜는 여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필녀(匹女)」가 와전되어 굳어진 명칭이다. 약수터 주변에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조용한 휴식처를 이루고 있고 주변의 가게들이 여러 가지 편의를 도모해 주기 때문에 큰 불편없이 조용하게 쉬었다 오기에 적당한 곳이다. 이 필례계곡은 한여름 44호선 국도가 막힐 때 우회도로로 이용할 수 있다. 필례 약수터 길은 인제 - 한계령 구간의 도로정체를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이며, 필례약수터는 한계령 정상에서 오색약수터 쪽으로 6백m쯤 내려오면 오른쪽 언덕으로 필례약수터 간판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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