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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건의 로케이션 정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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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원주시
보문사
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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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철원군
철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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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철원군
도피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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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문화유산
  • 원주시
용소막 성당
원주용소막 성당   종 목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천주교/ 성당 수량/면적 : 1동 지정(등록)일 : 1986.05.23 소 재 지 : 강원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719-2 시 대 : 기타 소유자(소유단체) : 천주교원주교구장 관리자(관리단체) : 천주교원주교구장 상 세 문 의 : 강원도 원주시 문화관광과 033-737-2791~4   풍수원성당과 원주성당에 이어 세번 째로 지은 천주교 성당이다. 고종 광무 2년(1898)에는 원주 본당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광무 8년(1904)에 프와오신부가 본당 신부가 되면서 독립된 성당이 되었다. 처음에 성당건물은 초가집이었는데 시잘레신부에 의해 벽돌건물로 지어지게 되었다. 한국전쟁 때 일부 파손된 것을 후에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중앙에 종탑이 튀어나와 있고 건물은 네모난 모양이며, 붉은 벽돌로 쌓았다. 건물을 받쳐주는 버팀벽은 회색벽돌을 사용하였다. 창의 모양은 모두 아치형이며, 테두리를 회색벽돌로 장식하였고, 내부 바닥은 널판지마루이며 벽은 회를 발라 마무리 하였다. 원주 용소막성당은 이 시대 성당건축양식의 일반적인 형태와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지붕 꼭대기의 뾰족한 탑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 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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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철원군
심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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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횡성군
풍수원 성당
풍수원 성당   풍수원 천주교회는 가톨릭 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풍수원 천주교회당은 한국에서 지어진 4번째 성당이며, 한국인 신부에 의해 지어진 첫 번째 성당이기도 하다. 풍수원 본당은 춘천, 원주, 화천, 양구, 홍천,횡성, 평창, 양평 등 12개 군의 29개 공소를 관할하다가, 1896년 원주 본당이 분할되고 1920년에 춘천 본당, 1948년에 홍천 본당을 분할하게 된다.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위치한 풍수원성당은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이 풍수원 지역은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교우촌이 형성되어 신앙생활을 영위하다가 1888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르메르(한국명 李類斯) 신부를 최초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당시 신자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대 주임으로 정규하(鄭圭夏) 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 착공하여 1907년 준공하였고,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서남 방향으로 자리잡은 본 성당 건물은 열주의 아케이드와 천장(천장)에 의해 실랑과 측랑이 구분되는 삼랑식 평면으로 되어 있다. 전면 중앙에 도출하여 위치한 주현관, 2층의 원화창, 3층의 2연 아치창, 2연 비늘창이 있는 종루의 중첩은 위로 향하며 줄어든 부축벽과 함께 수직성을 강조하며 중앙 입면을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아 지난 1920년부터 매년 추진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성체현양대회가 열리고 있다.   * 출처 : 횡성문화관광 http://tour.hs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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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철원군
대한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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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횡성군
횡성성당
 횡성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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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낙산사
 낙산사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며, 또한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세웠다고 하며,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의 중건(重建)을 비롯하여 몇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고 말았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다. 파도소리와 풍경소리 그리고 목탁소리와 산새소리가 수평선 끝에서 들려오는 곳이며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경내에는 홍예문, 7층석탑 등 문화재가 숨쉬고 있다.   * 출처 : 양양관광홈페이지 http://tour.yangyang.go.kr/site/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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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죽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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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휴휴암
 휴휴암   양양에서 강릉방향으로 7번국도를 따라 5분정도 달리다 보면 휴휴암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휴휴암을 1997년 해안가에 세워진 사찰로 파도가 깍아 만든 여러 종류의 다양한 바위가 있다. 그 중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데 많은 불교신자들이 매년 이곳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있다.   * 출처 : 양양관광홈페이지 http://tour.yangyang.go.kr/site/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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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현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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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명주사
명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1009년(고려 목종 12) 혜명대사와 대주대사가 함께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곧 혜명과 대주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창건 당시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고 하므로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1123년(인종 1) 청련암(靑蓮庵)과 운문암(雲門庵)을 세우고, 1673년(조선 현종 14) 수영(水瑩)이 향로암(香爐庵)을 세웠다. 이 중 운문암은 본래 다른 이름이었으나 나중에 김시습(金時習)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1701년(숙종 27)에는 벽옥루(碧玉樓)를 세웠으며, 1781년(정조 5) 연파(蓮坡) 영주(永住)가 원통암(圓通庵)을 세우고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1861년(철종 12) 불이 나자 월허(月虛)가 중건하였고, 1879년(고종 16)에 다시 불이 난 것을 1880년에 중건하였다. 1897년에도 불이 나 본사를 원통암으로 옮겼는데, 이후 원통암 자리가 현재의 명주사 자리가 되었다. 1917년에 백월(白月)이 중창하고, 1923년 윤설호(尹雪昊)가 중수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되었으며, 1963년 법당?삼성각?추성각을 중건하고 꾸준히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예로부터 선원(禪院)으로 이름나 많은 학승을 배출하였다. 월정사 주지를 지낸 종욱(鍾郁: 1884∼1969)도 이곳 출신이다.   * 출처 : 양양관광홈페이지 http://tour.yangyang.go.kr/site/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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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진전사
진전사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때 창건 된 사찰로, 도의성사가 오랫동안 주석한 곳이며 일연선사도 이곳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467년까지 사찰이 존속하였으나 어느 시기엔가 폐사되어 일제강점기까지 둔전사로 불리워 오다 발굴조사 등을 통해 진전사로 확인되어 최근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인 도의선사와 연계한 사상성이 부각되는 절터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2005년 6월 사찰을 다시 지었다.   * 출처 : 양양관광홈페이지 http://tour.yangyang.go.kr/site/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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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영혈사
영혈사   영혈사는 양양읍 화일리 323번지의 설악산 관모봉 아래에 위치하며 신라 문무왕 9년(689)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조선 숙종 16(1690)년에 취원대사가 중건하고 영천(靈泉)이라 개칭하였으며,숙종43년(1704)년에는 학천대사가 사찰의 북쪽 10여리에 학소암을 지었는데 순조 26년(1826)에 폐지되었으며,고종 24년(1887)에 영천사를 중수하고 절의 이름을 다시 영혈사라 하였다.영혈사의 원통보전은 원래의 자리에서 절의 좌측 앞쪽으로 이전 복원되었는데, 정면 세칸,측면 두칸,홑처마팔작지붕의 굴도리집이며,그 외에 극락보전과 요사채,산신각등의 부속건물이 있다.또한 영혈사의 입구쪽에 석종형의 팔각원당형 등 화강암제의 부도 3기가 있는데 모두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 : 양양관광홈페이지 http://tour.yangyang.go.kr/site/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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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양군
지장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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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영월군
법흥사
 법흥사   신라 진덕왕 647년경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고'사자산사'라 명칭 되었으나 1939년 중수불사시 사자산적멸보궁이라 개칭 하였으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대보궁 중의 하나이다. 사리탑 옆에 는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이 있다. 법흥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한 흥녕사 절이다. 당시 징효대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다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등에 나누어 봉안하고, 이곳에 적멸보궁형 법당을 세웠다. 법흥사는 이들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인데, 징효대사는 법흥사 적멸보궁 뒷산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한다. 때문에 적멸보궁안에는 부처의 삼존불이 없고 , 뒤쪽으로 뻥뚫린 창만 하나 나 있다. 이것은 산 전체가 부처의 몸이라고 전하는 법흥사 적멸보궁의 뜻이라 한다. 법흥사는 한때 2천여명의 수도승이 운집하기도 했던 큰 가람이었으나, 수차례의 화재로 인해 절간을 모두 소실하고 현재는 적멸보궁과 심우장 , 요사채, 징효대사보인탑비,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이 남아있다.   * 출처 : 영월문화관광 http://www.yw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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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영월군
금몽암
 금몽암   금몽암은 보덕사에 소속된 암자로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의상조사가 지덕암(旨德庵)로 창건하여, 조선 세조3년(1457)에 금몽암(禁夢庵)이라 개칭하였으며, 광해군 2年(1610)에 군수 김택룡이 증축하면서 노릉사(魯陵寺)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영조 46년(1770)에 금몽암이라 개칭되어 보덕사에 예속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단종(1441~1457, 재위 1452~1455)이 영월로 유배된 후 이 암자가 궁에 있을 때, 꿈속에서 유람하던 곳과 흡사하다고 하여 금몽암이라고 하였다 한다. 평면형태는 ‘ㄱ’자형으로 동편의 높이 150cm가량의 석축기단 위에 있는 정면 5間, 측면 2間의 건물과 북편의 정면 3間, 측면 1間의 누각식 2층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임란때 불타고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영조 21年(1745)에 지금의 모습과 같이 사찰건물과는 다른 민가형태로 재건하여, 일반가옥의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이 건물 뒤쪽에 정면 2間, 측면 4間의 누각식 마루가 있는 금당 성격의 산운각(山雲閣)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근처에 장릉이 있어 단종의 원당(願堂)으로 여겨진다.   * 출처 : 영월문화관광 http://www.yw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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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영월군
보덕사
 보덕사   보덕사는 영월읍 북방 3km 떨어진 능동에 있는 고찰이다. 686년 의상조사가 창건하고 발본산 지덕사라 하였다.(일설에 의하면 714년 혜각선사(蕙覺禪師)가 창건하였다고도 함) 그 후 1161년 즉 고려 17대 인종 32년에 설허선사와 원경국사가 극락보전 사성전 염불암 고법당 침운루 등을 증축하였다. 1456년 단종대왕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이곳 영월로 유배되자 사찰명은 노릉사라 개칭하게 되었다. 1905년 숙종 31년에 한선선사와 천밀선사가 대종을 만들어 설치하게 되자 사찰명도 장릉 보덕사로 고쳤다. 그 후 1726년(영조 2년) 6월에 태백산 보덕사라고 개칭하게 되었다. 지금은 평창군에 있는 오대산 월정사에 속한 제일 거찰로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원형대로 복원되어 가고 있다. 영월 북방 발본산밑 바른편에 위치하고, 앞으로는 동을지산과 장릉이 한눈에 보인다.   * 출처 : 영월문화관광 http://www.yw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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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시설
  • 양구군
드레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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